(기고)통영에 이중섭 미술관, 왜? 어떻게? - 깅근식 되의원

(기고)통영에 이중섭 미술관, 왜? 어떻게? - 깅근식 되의원

통영방송 0 4,191 2021.07.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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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재조명 




이중섭과의 특별한 인연은 없다. 하지만 책 속에서 이중섭을 만났고, 제주도를 갈 때마다 

이중섭 미술관과 거리를 찾았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이중섭과 통영의 인연을 알고 있는 통영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무언가 모를 마음의 빚이 내 마음 한구 석 깊숙이 박혀 있는 것 같아 아리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한국전쟁 시절 11개월 남짓 보낸 제주도도 이렇게 천재 화가를 기억하고 있는데, 서귀포 생활을 거치고 가족들과 일본에서 잠시 만나고 헤어져 사무친 그리움을 채우려고 일본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 온 통영, 이런 마음을 달래고 본인의 작품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통영이 이래도 되나 싶은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왜 통영에 이중섭 미술관이어야 하는가? 

통영과 인연은 1952년 당시 나전 칠기 기술양성소 주인 강사였던 유강렬과 도움으로 이중섭은 터를 잡고 생활하기 시작 이곳에서 김용주 화백과 활동을 함께 했으며, 종종 학생들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1954년 항남동 성림다방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통영에는 많은 애환과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 한 분의 제자가 통영 옻칠 미술관 설립자 김성수 화백이며 나전칠기 기술양성소 1기로 작품 활동이 현재까지도 가장 왕성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중섭이 거주했던 경상남도 도립 나전 칠기 기술양성소가 국가 등록 문화재로 최근 등록되었다. 


이중섭 작품 활동의 르네상스 시기였던 통영, 이제 그를 재조명하고 기려야 한다. 

특히 통영은 이중섭이 2년간 거주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동양의 나폴리 통영”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통영 풍경, 통영 앞바다 등 통영의 멋진 풍경을 유화로 남겼고, 불멸의 대표작인 “흰 소”도 탄생시켰다. 그리고 황소, 세병관 풍경, 충렬사풍경,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달과 까마귀, 부부, 가족 등 무려 30여 점이 넘는 작품이 통영에서 완성되었다. 

이만큼 이중섭은 통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중섭에 대한 사업과 기록은 미비하기 짝이 없을 정도이며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라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물론 통영이 고향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북한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그에게 묻는다면 마음의 고향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통영에 이중섭 미술관을 건립할 것인가? 

당장에 미술관을 건립한다는 것은 예산적인 문제와 운영비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한발 한발 나아가 보자. 먼저, 통영에 2년간 거주한 건물에다 이중섭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외관을 디자인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여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자. 당장에 삼성가로부터 작품을 기증받을 수 없다면 대여를 통한 전시라도 진행해 보자. 그러면서 포기하지 말고 우리 시도 지속적인 작품 확보를 위한 노력도 기울여 나가고, 작품을 기증해주면 전시할 수 있는 공간 마련도 병행해 나가자.  


다음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보자. 이중섭이 통영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을 법한 장소충렬사, 세병관, 남망산, 동피랑, 항남동 도깨비 골목 등에 작품과 해설을 배치하자. 

꾸준히 관리하고 다양한 이벤트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홍보해 나가자.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행해 나가다 보면 이중섭과 통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다. 


이렇게 진행할 때의 방향을 제주도와 차별화시켜 나가자.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박물관은 

이중섭이 11개월 동안 가족들과 머물면서 보냈던 시간에 대한 행복감이 작품에 묻어나 있다. 그래서 그림이 따뜻하고 즐거운 이미지가 넘쳐나는 것이다.  

하지만 통영에서의 작품들은 헤어진 가족과의 사무친 그리움과 그것을 잊기 위해 통영의 풍경들을 주로 그렸다. ‘부부’, ‘가족’,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충렬사 풍경’ 등으로 

차별화된다. 따라서 이중섭의 통영에서 가졌던 그러한 마음에 포커스를 맞추어 진행해 나가자. 커피도 맛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고, 어느 지역의 커피를 선호하는 매니아 층이 생겨날 

정도로 시장 자체가 세분화되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이런 것들을 ‘우보만리’의 심정으로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행해 나가다 보면 이중섭 미술관 

건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이면 이중섭 탄생 110주년이 된다. 

이때를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자. 

우리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의 기능을 강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을 지속시키는 관광의 가장 큰 힘은 문화와 예술에 있다. 나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과 관련된 많은 분들이 이중섭에 대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청산하고, 마음의 고향인 통영의 지속 관광을 위해서라도 이중섭 미술관은 꼭 필요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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